
2014년 6월 24일, 서태지 팬 하나가 열린 차고 문으로 들어와 그와 이은성의 신혼집에 침입했다는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아마 일부는 깜짝 놀라면서도 “서태지에게 아직 그런 팬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서태지에게 아직도 ‘응답하라 1994’의 윤진이 같은, 정력적인 광신도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세상에, 72년생의 아저씨에게 아직도 월담하는 사생팬이라니.
서태지와 만나고 싶다며 초인종을 수차례 누르며 주위를 배회하다가, 차고 문이 열리자 잽싸게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하니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집착적으로 진을 치고 있었나 싶어 소름이 끼칩니다.

그렇게 알아낸 사실은 그녀가 10년차 서태지 팬이라는 것.물론 데뷔 년도가 92년인 서태지에게 있어 그리 오랜 팬 경력은 아닌 셈입니다. 나름 신생 팬의 혈기로 저지른 우발적 범죄였을까요. 그녀는 이미 수차례 서태지의 집을 찾아왔었다는 것. 그녀는 무려 1년 이상 서태지 주택을 배회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독 치안이 잘 되어있는 동네인데다가 서태지의 집 또한 쉽사리 침입할 수 없는 구조였기에 더욱 이 사건은 충격이 큽니다.
음악적 재능 이상으로 전략가의 기질 또한 못지않았던, 콘텐츠의 제왕 서태지의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전략’은 바로 신비주의 전략입니다.

오히려 아이돌 성수기였던 아이들 시절보다 솔로 활동을 선언한 이후가 더 극성맞았다고 하는데, 한국도 아닌 일본까지 쫓아와 서태지의 집 근처에 거취를 마련해두고 생활을 감시하는 팬 때문에 일 년에 몇 번씩쯤의 이사는 예삿일이었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짐을 풀어놓을 틈도 없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극성팬의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방공호를 연상하게 할 만큼 침입에 대비한 서태지의 신혼집 또한 과민 반응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차고 문이 열렸을 때 서태지의 극성팬은 운전석도 아닌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실부터가 그녀의 소유욕을 상징하는 듯해서 소름이 끼칩니다.
문화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시대의 신드롬이었던 그에게 이런 해프닝쯤이야 견디어내야 할 비즈니스의 연장선이나 명예로운 훈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선택한 인생일지언정 평생을 탑 안에 갇힌 라푼젤처럼 살아가야 하는, 더 이상 전략만이 아닌 그의 신비주의 인생이 조금은 애처롭습니다.
데뷔 30주년, 서태지의 이모저모
1992년 4월11일 처음 방송된 <특종! 티브이(tv) 연예> (MBC)의 ‘신인 무대’ 코너에서 세 청년이 팔을 쭉쭉 뻗는 ‘회오리춤’을 열정적으로 추며 ‘난 알아요’를 불렀습니다. 작곡가 하광훈, 작사가 양인자, 평론가 이상벽, 가수 전영록 등 4명의 심사위원이 무대를 평가했습니다. 10점 만점에 7.8점이었습니다. 가요계의 판을 바꿔버린 역사적인 무대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였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시청자와 팬들의 뜨거운 평가를 받으며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데뷔 앨범은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1992년 최고 히트송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 음악을 전복시키고 1990년대 문을 열었습니다.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던 서태지(50·정현철)는 당시 잘나가던 댄서 양현석(52)·이주노(55)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1992년 3월23일 정규 1집을 내놓았습니다. 등장과 함께 충격과 전율을 선사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꿔버린 그들이 23일로 꼭 데뷔 30돌을 맞았습니다. 그들이 30년 동안 남긴 발자취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됐습니다.
‘난 알아요’의 문화충격(1집 1992년 3월23일)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문화혁명’이었습니다. 발라드와 트로트 위주였던 가요계를 단숨에 댄스음악 중심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타이틀곡 ‘난 알아요’는 한국어 랩이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깨고 힙합과 브레이크댄스 대중화를 이뤄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난 알아요’에서 시작된 돌풍은 후속곡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 음악에서 처음으로 노래 전체가 랩으로 짜인 ‘환상 속의 그대’ 역시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는 노랫말은 시적이면서 세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당시 분위기를 반영했습니다.
랩·메탈·국악의 접목 ‘하여가’(2집 1993년 6월21일)
랩과 메탈, 국악을 뒤섞은 실험작 ‘하여가’가 실린 2집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름으로 나온 4개 정규앨범 가운데 가장 수작으로 꼽힙니다. ‘하여가’는 이태섭의 기타 솔로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태평소가 합을 이루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노래입니다.

처음엔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2집은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더블 밀리언셀러(200만장)로 기록됐습니다. 돌연 잠적한 뒤 돌아오는 ‘음반 제작-컴백’ 패턴은 2집 때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발해를 꿈꾸며’와 ‘교실 이데아’의 사회적 메시지(3집 1994년 8월13일)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시대를 담은 사회적 메시지로 주목받은 앨범입니다.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는 대중음악으론 드물게 남북통일을 기치로 내세웠습니다. 뮤직비디오를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에서 촬영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라고 질문하고 “우린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라고 던진 질문은 전 세대에 걸쳐 평화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는 2002년 음악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고,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환송식에서도 울려 퍼졌습니다.

교육 문제를 꼬집은 ‘교실 이데아’도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같은 랩 가사를 강렬한 사운드에 담아 교육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노래를 거꾸로 돌리면 “피가 모자라”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동을 빚기도 했습니다.
사전심의제도와 ‘시대유감’(4집 1995년 10월5일)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은 음반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촉발시켰습니다. ‘시대유감’이라는 노래는 애초 4집에 가사와 곡이 온전히 실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연윤리위원회가 가사에 반사회적 감정을 담았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내리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서태지는 항의하는 뜻에서 노랫말을 모두 빼버리고 연주곡만 앨범에 실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서태지 팬덤을 중심으로 사전심의 폐지 운동이 일었습니다. 결국 1996년 제도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서태지는 이를 기념해 온전히 가사를 살린 ‘시대유감’을 싱글로 내놓았습니다.
솔로 서태지와 5~9집
“4년간 활동을 마무리하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1996년 1월31일, 4집을 끝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작업은 살이 애리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2004년 선보인 7집은 좀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앨범으로, 타이틀곡 ‘라이브 와이어’에선 감성 멜로디가 묻어났습니다. 2008년 8집은 청량한 느낌의 ‘모아이’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습니다.
서태지는 이 노래를 두고 “남녀 관점에서 바라본 1980년대 소격동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고수하던 신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해피 투게더>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서태지가 남긴 유산 “K팝의 원형”
서태지의 등장은 케이팝의 원형을 만들며 한국 가요사에 획을 그은 사건이었습니다. 서태지의 파격과 실험, 사회적 메시지는 여전히 케이팝의 주요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대중문화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합니다.
2017년 서태지가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연 데뷔 25돌 기념 콘서트에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당시 서태지가 방탄소년단에게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라고 한 말은 두고두고 회자됩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서태지가 데뷔한 1992년 당시는 한국에서 엑스(X)세대가 출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서태지는 엑스세대가 원했던 개인주의, 기성세대와 다른 비판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서태지는 음악과 춤을 결합했고, 세련되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갔다”며 “한국에는 없던 음악 언어로 젊은 세대의 욕망을 대변하는 노래를 보여줬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임진모 평론가는 “서태지는 한국 가요를 전복 수준으로 바꿔놓았습니다. 혁명이라고 해주셔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댄스의 충격, 랩의 충격이었다”며 “그 존재감은 ‘문화 대통령’에 함축돼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서태지는 주변이라고 여겼던 문화가 중심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그건 정치·사회 분야가 아닌 문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충격이었다”고 되짚었습니다.

‘컴백홈’이 담긴 서태지와 아이들 4집 당시 스타일링을 담당했던 고경민 아메바컬쳐 대표는 “서태지는 국내에서 최초로 대중음악을 음악의 범주를 넘어 사회, 문화 등으로 확산시킨 아티스트”라고 평가했습니다.
서태지는 2014년 이후 음반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공연도 2017년이 마지막입니다. 그는 2021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25주년 공연 무대에서 ‘우리 30주년에 또 만날까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10집도 나오고 30주년 공연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늦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새 음반이나 공연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올해 ‘30주년 프로젝트’를 선보일지에 모든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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